* 고등학생인 할리가 토니와 재회합니다. (플롯을 조금 수정해서 홈커밍 이후, 인피니티 워 이전 시점으로 변경합니다. 추후에 전개될 내용에 인피니티 워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고등학생 할리가 원작에 나온 적이 없기에 개인적인 캐 해석, 캐붕, 날조 주의해주세요!
* 현생에 치이는 상황이라 어벤져스4 개봉 전까지 천천히 씁니다.
『보스, 할리 키너에게서 온 통화예요. 연결해드릴까요?』
“누구라고?”
토니는 대외용이라 할 수 있는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대기시켜둔 차로 걸어가다가 프라이데이가 침착한 목소리로 읊어주는 이름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할리? 누구더라. 실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기에 토니는 잠시 멈춰 서서 구석에 밀어둔 먼지 쌓인 기억들을 뒤져보았다. 프라이데이가 장난을 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토니는 저도 모르게 정장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방금 들었던 이름과 정확히 같은 이름이 반짝이는 액정 위에 떠있었다. 영 희미했던 연결고리가 몇 박자 늦게 이어졌다. 아, 테네시 주 로즈힐의 그 꼬맹이. 맞아. 이름이 할리였었지.
그 당돌한 꼬맹이를 잊을 리가. 아니, 그런데 왜 잊지 않은 거지? 토니는 잠시 말없이 액정을 응시하며 마음속으로만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세기의 천재인 토니가 마음만 먹는다면 누군가를 기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재라는 게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토니는 오히려 흥미가 없는 것, 그리고 관심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머릿속에서 금방 지워버리는 일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소한 기억들이 지워진 자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줄도 이해하지 못할 복잡하고 어려운 지식들로 채워진다. 일례를 들자면, 페퍼는 토니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 쓰던 인물이었음에도 알레르기가 있는 단 하나의 음식을 화해 선물이랍시고 가져가는 바람에 곤혹을 치렀던 적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세계적인 영웅인 아이언 맨에게 팬보이란, 의미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주 특별하다고 할 것도 없는 존재였다. 할리라는 꼬맹이는 그 유명한 토니 스타크의 얼굴도 못 알아보긴 했지만-생각해보면 토니로서는 이 또한 나름대로 색다른 경험들 중 하나였다-기본적으론 아이언맨 팬보이라는 건 맞았다. 토니는 인생에서 옷깃을 스친 사람만 해도 수없이 많은 유명인사에 플레이보이였던지라 토니에게 무언가 의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만났던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지워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자비스마저 곁에 있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 테네시 로즈힐에 불시착해버린 토니에게 꽤 많은 도움을 준 꼬맹이니까 기억에 남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지만.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잠깐 도움을 줬던 팬의 이름은 뭐였더라? 게이브? 제리? 자신의 얼굴을 제법 그럴싸하게 새겼던 타투는 꽤 인상적이라서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뭔가 하나 더 비슷하게 따라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사실 헷갈렸다. 수염을 따라했다고 했나? …머리 스타일이었나? 뭐든지 간에 하나도 안 똑같다고 느껴서 바로 기억에서 지워버린 모양이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내비쳤고, 비록 잠깐이지만 도움을 줬던 그 팬에겐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들기는 하지만, 토니에게 있어 그는 ‘잠시 도움을 받은 유별난 팬’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 꼬맹이는, 왜인지 모르게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여서 그럴지도. 떠난 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오랜 외로움에 닳고 닳아서 흐릿한 미소만을 짓고 있던 얼굴이 비교적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도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게 언제였더라. 토니는 언젠가 그 꼬맹이에게 받았던 문자 한 통을 떠올렸다. 여즉 기억에 남은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당돌함은 건조한 텍스트에도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아저씨, 저 폰 샀어요. 저희 집 전화번호 벌써 지워버린 건 아니죠? 연락하게 될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드릴게요. :) - Harley Keener]
요즘 어린애들은 이렇게 적극적인가? 그동안 원나잇 했던 이들 중에서도 이런 적극성은 보기 드물었는데. 저번에 보답으로 보내준 크리스마스 선물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인지 할리는 토니에게 감사 인사를 담은 이메일을 보낸 것도 모자라 그로부터 시일이 좀 지난 후에도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해오곤 했다. 전화번호는 자신이 연락하라고 남겨뒀다 쳐도 자신에게로 직접 전달되는 개인 이메일은 어떻게 안 건지. 예상 못한 메시지를 받았던 토니는 답장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기색으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 번호가 자신의 것이 맞다는 의미로 알았다고 짧게 메시지를 보냈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kid. 저번에 줬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잘 쓰고 있어? 장비 같은 게 필요하면 말해. 토니 스타크인데 그 정도도 못해주겠어? 원하면 몇 박스라도 보낼 수 있으니까.]
*
“흠…….”
『할리 키너. 보스의 휴대폰에는 할리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네요. 보스가 직접 저장하신 듯한데,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드릴까요?』
“아니, 됐어.”
전화가 수신 대기 중임을 알리는 화면 위로 최근 자신이 보낸 메시지 일부가 짤막하게 보이는 걸 보며 토니는 짧게 중얼거렸다. 문자야 몇 번 온 적이 있다지만 전화가 온 건 그 이후로 처음이었기에 토니는 답지 않게 잠시 머뭇거림의 시간을 가졌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라는 토니다운 걱정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쳤지만 꼬맹이가 전화 한 번 했다고 해서 별일 있겠나 싶었다. 최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할 기세로 하루에도 열 번씩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퀸즈 꼬맹이에게 익숙해진 터라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통화 연결해 줘.”
『네.』
“Hello.”
“아저씨.”
이 녀석 목소리가 원래 이랬던가? 드문드문 흩어져있던 기억들이 조각 모음이라도 하듯 머릿속에 차곡차곡 조립되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보다는 한층 낮고, 굵어지고, 단단해진 목소리에 토니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하긴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고 했으니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꼬맹이가 몰라볼 만큼 컸다고 해도 새삼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휴대폰 너머는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웅성거림에는 간혹 자신의 이름도 섞여있는 것 같았다. 잠깐, 내 이름이 왜 저기서 나와? 토니는 자신의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소음이 반 박자 정도 늦게 휴대폰 너머에서 똑같이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그 꼬맹이가 있을 것이다. 토니는 선글라스 안에서 갈색 눈을 바쁘게 굴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들 중 희미한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맑은 벽안 또한 자신을 똑바로 향하고 있으리라.
“여기.”
와글와글 뒤엉켜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 꼬맹이’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선글라스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시선은 자연스레 할리의 곧은 시선과 맞닿았다. 통화를 하면서 토니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할리는 전반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토니가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여전히 당돌하고, 토니가 봐온 여타 꼬맹이들과는 다르게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좀 일찍 철이 든 녀석이었지. 그래야만 했던 거겠지만. 그런데 동시에 할리는 토니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제법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토니는 할리와 가까이 마주한 후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오, 맙소사. 토니는 마음속으로만 작게 되뇌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클 수 있다는 얘기는 누구도 나한테 해준 적이 없었는데. 제게로 다가오는 할리를 제지하려고 나서는 경호원들을 손짓 한 번으로 물러나게 한 토니는 할리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자신의 턱이 점점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림잡아도 70인치-180cm-는 넘어 보이는데. 기억에 따르면 분명 아직 법적으로 성인 딱지가 붙지도 않은 꼬맹이일 텐데 순간적으로 ‘꼬맹이’라는 호칭이 목구멍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자신의 허리쯤에서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던 꼬맹이라고 하기엔 보이는 변화가 심히 컸기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참나, 이 꼬맹이는 어째 만날 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네. 오랜만의 재회라 반가움을 드러낼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자신이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다고 반가워서 방방 뛰는 이미지도 아니었고 여러모로 그럴 기분도 아니었다. 토니는 말없이 할리를 올려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느긋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얼굴에 잔잔하게 퍼져있는 미소가 얄밉게 보이는 건 아마 기분 탓일 거라 생각했지만 뒤이은 말은 그 오해를 정정하겠다는 티끌만큼의 생각조차도 지워내 버렸다.
“어라. 놀란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솔직히 기대했던 반응이랑은 좀 다르네요, 아저씨. 너무 충격 받아서 그래요?”
“충격은 무슨……. 말본새를 보니 더 볼 것도 없이 로즈힐 꼬맹이가 확실한 것 같고. 여전하네, kid?”
“여전할 건 여전한데, 좀 많이 컸죠?”
말이 끝나자마자 토니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좀 더 깊어지는 걸 알아챈 할리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할리는 지금의 상황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즐거웠다. 찾아가기에 적당한 타이밍을 잴 것도 없이 그냥 진작 찾아올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물론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몇 년 동안 자신이 이 순간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 알 턱이 없었기 때문에 극적인 반응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충분했다. 영 희미하게 느껴졌던 연결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일단은 이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족하다. 물론 자신은 욕심쟁이라 여기에서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뭐든 시작이 중요한 법. 할리가 판단하기에 나름 성공적으로 첫 단추를 꿴 셈이라 할 수 있었다. 일면 침착한 것 같아 보이지만 아까부터 계속 불퉁한 표정을 짓는 토니를 보며 할리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귀엽다.’
나보다 나이 한참 많은 아저씨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키가 생각 이상으로 쑥 커버려서 아이언 맨이나 토니 스타크가 마냥 커보였던 예전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인간은 자신보다 작은 존재에 대해서는 곧잘 귀엽다고 느끼곤 하지 않는가. 귀여움을 느끼게 되는 기준이 크기에 대한 비교만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할리는 일단 그렇게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생각을 입 밖에 냈다가는 연결이고 뭐고 눈앞에서 차 타고 사라질 게 틀림없는 데다가 이 찰나에 스쳐지나간 생각이 어떤 마음에서 기인했는지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금은 일단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해왔던 그 상황을 지금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데 뜻밖의 변수로 인해 망치길 원치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라면 그게 진짜 이상한 거지. 이런 경험이 나에게 흔하지 않았다는 건 인정할게. ……근데 꼬맹이 너, 묘하게 즐거워 보인다? 지금 은근슬쩍 나 놀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근데 지금 상황이 좀 재밌긴 해요. 내가 많이 크긴 했다고 새삼 느낄 수 있는 기회도 흔한 건 아니잖아요. 거울로 맨날 보면 스스로 많이 바뀌었단 게 잘 실감은 안 되니까요.”
“재밌긴. 그래봤자 나한테는 어차피 한참 어린 꼬맹이인데.”
“다시 만나면 적어도 꼬맹이란 호칭은 쏙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아저씨도 여전하네요. 이렇게 큰 꼬맹이 본 적 있어요?”
즐겁게-할리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겠지만-말을 주고받는 사이 주변의 웅성거림에 아까와는 조금 다른 기류가 감돌고 있다는 걸 알아챈 할리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 아저씨. 잠시만요.’라고 작게 속삭이곤 성큼성큼 토니를 지나쳐 걸어갔다. 토니가 표정 가득 의문 부호를 담은 채로 뒷모습을 눈으로만 쫓는 걸 느끼며 할리는 능청스럽게 토니 옆에서 줄곧 대기 중이던 차로 다가갔다. 토니가 방금까지 열고 들어가려던 차문의 건너편에 선 후에야 할리는 걸음을 멈췄다. 토니를 만난 후 얼굴에서 사라질 줄 몰랐던 웃음기가 조금 더 짙어졌다.
“잠깐만 실례할게요.”
말이 끝나자마자 이루어진 행동들은 너무나 신속하고 자연스러워서 토니가 뭐라 반응할 틈도 없었다. 할리 앞에 있던 차문이 벌컥 열렸고, 차 안에서 경악한 해피의 ‘으악! 너 뭐야, 꼬맹이?!’라는 비명이 반 정도 들려오기도 전에 할리의 모습은 차문 안으로 사라졌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더 커진 걸 느낀 토니는 마른세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만만치 않은 꼬맹이다. 주변에서 할리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다는 건 토니 또한 느끼고 있었지만 이 상황에서 자신의 차에 들어가면 그 궁금증을 더 증폭시키는 꼴이라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토니의 생각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열정적인 기자 한 명이 다가와 토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까 차에 탄 사람은 누군가요?”
썬팅된 차 안에서 해피와 옥신각신-해피가 열세일 것으로 예상되는-하고 있을 할리를 생각하며 토니는 소리 없이 한숨을 쉬곤 어깨를 으쓱였다.
“스타크 인더스트리에서 지원하는… 장학생? 뭐 그런 겁니다. 전 일정이 있으니 인터뷰는 다음 기회에! Bye!”
토니는 아까 봤던 미소와 비슷한, 약간은 짓궂고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무어라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차문 안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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