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5에 쓴 글.
*임시 냥집사가 된 피터X갑자기 고양이가 되어버린 토니로 장편보다는 짧은 에피소드 모음입니다.
Ep 01.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가 된다는 것
힘들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눈 앞의 시야가 빙글빙글 돌았다. 한동안 가만히 누워만 있었더니 아지랑이마냥 흐물흐물하게 퍼져가던 눈 앞의 풍경이 천천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겨우 정신을 추스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매캐한 연기 냄새였다. 거의 반 이상 구멍이 뚫려 푸른 하늘을 드러내는 철제 천장은 사실상 제 기능을 하기 힘들어보였고, 자신이 누워있는 곳 주변에는 부서진 잔해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는 구석에서 불 타고 있는 기계들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 젠장. 어쩌다 이렇게 됐었지? 기억해보자. 괴짜라고 할만큼 기이한 행보를 보이고 있던 빌런을 쫓아 여기까지 왔었지. 경찰들이 몇 번인가 허탕을 친 후 또 다른 소동을 일으키려고 했을 때 미리 예측해서 훌륭하게 제지를 했고, 상대를 제압하기 직전까지 갔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 이겼다고 방심하며 경찰의 무능함을 조금 흉봤던 것 같은데, 갑작스레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온 빔 중 하나에 맞았다.
녀석의 본거지였으니까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프라이데이가 그 장소를 스캔하고 용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장치들이 많이 포진해있다고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설마 자기 아지트까지 자폭시켜버리는 수준의 공격을 숨겨뒀을 줄은 몰랐다. 영화에서 상대를 빨리 마무리 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다가 역습 당하는 패턴은 꽤 흔하지만, 아이언맨은 예외일 줄 알았지.
막판에 놓치긴 했지만, 어쨌든 이제 대항할 수단이 별로 없을 테니 잡기만 하면 된다. 토니는 몸을 일으키려고 팔에 힘을 줘보았다. 분명 부상 당한 곳은 없는 것 같은데도 아머가 이상하리만치 무거웠고 도통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해둔 거야? 마비라도 시킨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감각은 멀쩡하게 살아있어서 토니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겠다. 토니는 프라이데이를 부를 양으로 입을 열어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냐아.
냐아? 익숙한 제 목소리는 안 들리고 아주 가까이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려옴에 토니는 잠시 당황했다. 분명히 프라이데이를 불렀던 것 같은데. 토니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냈다.
갸옹!
Damn it. 설마 이거 내 목에서 나오는 소리야? 아니지? 토니는 그제서야 현실을 자각하곤 좀 더 팔을 버둥거려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팔이라 생각한 것은 고양이의 앞다리가 되어 넉넉한 아머의 팔부분에서 오르락내리락할 뿐이었다. 아머 팔 안쪽의 금속에 고양이 발톱이 부딪혀서 아주 작게 팍팍, 하고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의 방심의 대가는 꽤나 혹독했다. 설마하니 고양이가 되어버릴 줄은.
「보스. 고양이가 되어버리셨네요.」
프라이데이, mute. ...라고 하고 싶었지만, 영 익숙해지기 힘들 것 같은 고양이 소리를 내는 것보다는 조용히 있는 게 나은 것 같아서 토니는 뚱한 표정으로 하늘만 노려보았다. 차라리 다친 거라면 질리도록 익숙한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긴 찾을 테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양이 소리의 음 높낮이를 분석해서 감정이나 의사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고양이 언어까지 입력되어있는 건 아니라서 정확하지는 않아요. 수동 조작 모드로 설정해두겠습니다. 스크린을 터치해서 지시 사항을 입력해주세요.」
눈 앞에 띄워진 UI가 조금씩 바뀌더니, 터치해서 입력할 수 있는 자판이 중앙에 나타났다. 토니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오른쪽 앞발을 꼼틀꼼틀 조금씩 움직여 아머 팔에서 빼낸 후 자신의 눈 앞에 떠있는 스크린으로 쭉 내밀었다. 당연하게도 아머 팔을 움직이는 것보다야 훨씬 쉬웠다. 따지고 보면, 지금 자신은 아머 헤드 부분에 머리만 간신히 걸치고 있는 수준일 것이다. 잘은 몰라도 고양이가 된 자신의 몸보다 아머가 몇 배 정도는 더 클 테니까.
「지문 인식 대신 고양이 발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입력해둘까요?」
나름대로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놀림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토니는 코를 찡긋거렸다. 수염이 코의 움직임에 따라 살짝 흔들거렸다. 'Nope'라는,원래 목소리라면 드러났을 퉁명스러움이 보이지 않는 간결한 메시지를 입력한 후 토니는 아머 헤드 부분에 앞발을 걸친 채 생각에 잠겼다. 이 몸으로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건 역시 무리일 텐데.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그래도 한 명? 아니, 두 명 정도는 필요했다. 일단 해피에겐 말해야겠고, 한 명 정도 더 고르자면... 후보를 머릿속으로 물색해보던 토니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내뱉는 숨에 따라 고양이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 녀석에게 찾아가는 게 맞는 건가.'
역시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은데, 우습게도 떠오르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는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왠지 모르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애완동물은 전혀 안 키우는 것 같았지만,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동물들도 잘 따른다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거미라서 그런가?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토니는 앞발로 톡톡 앞을 두드려가며 경로를 설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쓸 줄은 몰랐지만, 슈트의 자동 비행 기능은 정말 유용했다.
「목적지는 퀸즈에 있는 파커 군의 집, 맞나요?」
토니는 대답 대신 양발을 뻗어 아머의 헤드 부분에 야무지게 올렸다. 아머 안쪽에 고양이 발톱에 할퀸 자국이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행 중에 미끄러져서 아머의 몸통에서 굴러다니는 일은 정말이지 겪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비행하기에 안정적인 자세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자 토니는 고개를 가볍게 꾸닥거리며 앞발을 쭉 뻗어 스크린에 있는 화면을 톡 건드렸다.
아머가 자동적으로 몸을 일으키자 갑자기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된 토니는 아머 헤드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나마 고양이로 변해서인지 어떻게든 버티고 매달려 있을 수는 있었다.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슈트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이내 하늘에서 작고 붉은 점이 되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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